18대 총선 20대 투표율에 숨겨진 의미

- 02년에서 07년 사이에 20대에게 무슨일이 일어난것일까?

- 조성주 통일뉴스 기획위원



18대 총선이 끝나고 2주일이 흘렀다. 모두가 알고있듯이 18대총선은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진영의 200석이 넘는 의석확보로 진보개혁세력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여하튼 패배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민주노동당의 경우 대선패배와 분당이라는 큰 시련속에서 5석의 의석을 확보하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것 정도일 것이다.

한 편으로 이번선거에서 충격적인 것 중 하나는 현저히 낮은 투표율이다. 전체 46%정도의 투표율로서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약 4개월전 치루어진 대통령선거에서도 63%정도의 투표율로 투표가 저조했다는것을 감안하더라도 50%도 되지 않는 투표율은 대표성이라는 것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특히나 20대의 투표율과 관련해서는 선거가 끝나자 마자 인터넷상에서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대의 투표율이 무려 18%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이중에 약 53%정도가 한나라당을 지지했다는 MBC의 출구조사 결과는 전통적으로 20대는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 진보개혁진영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20대의 투표율이 구체적으로 몇%인지 정확히 집계가 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몇 개월후 중선관위가 분석을 통해 이를 발표하기 까지는 20대의 투표율이 실제 19%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중선관위가 공식적으로 연령대별 투표율을 발표하는 것은 보통 몇 개월정도 지나서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30%정도 투표를 했다고 하나 이도 확인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20대의 투표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낮았다는 것이고 아마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이 전체 투표율보다 15%이상씩 낮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에도 최소한 30%를 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0대는 왜 이렇게 낮은 투표율을 보이는 것일까? 과연 지금의 20대는 완전히 탈정치화되어 버린것일까?

20대 전체가 탈정치화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20대의 저조한 투표율을 가지고 20대가 보수화되었다느니, 탈정치화되었다느니 하며 쉽게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물론 이 말이 ‘20대가 진보개혁적이다‘라는 식의 역이 성립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필자는 20대의 저조한 투표율은 97년 IMF이후 변화된 한국경제의 구조와 그 이후 진보진영과 개혁진영이 걸어온 노선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의 표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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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보면 전체적으로 투표율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대선의 경우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으나 추세는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특이할만한 것은 00년에 치루어진 16대 총선보다 04년에 치루어진 총선의 투표율이 높은 것인데 이는 당시 있었던 탄핵열풍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며 00년이후 급격히 확대된 인터넷으로 인한 참여민주주의의 확대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지금까지 치루어졌던 각 선거별로 연령대별 투표율을 확인해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20대 전반의 투표율과 20대 후반의 투표율의 차이이다.

19세

20대전반

20대후반

30대전반

30대후반

40대

50대

60대이상

‘07 17대 대선

54.2

51.1

42.9

51.3

58.5

66.3

76.6

76.3

‘04 17대 총선

-

46.0

43.3

53.2

59.8

66.0

74.8

71.5

‘02 16대 대선

-

57.9

55.2

64.3

70.8

76.3

83.7

78.7

‘00 16대 총선

-

39.9

34.2

45.1

56.5

66.8

77.6

75.2

      <자료참조 : 2007년 대선 투표율 분석 보고서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선과 총선의 경우 투표율의 차이가 크니 일단 총선은 총선끼리 대선은 대선끼리 선거가 치루어진 시간대별로 분석을 해보자. 투표율은 둘째로 하고 일단 00년 16대 총선부터 보면 20의 투표율은 20대전반과 후반의 차이가 약 5%, 16대 대선에서 2.7%, 17대 총선에서 2.7%의 차이를 보인다. 20대 전반이 20대 후반보다 투표율이 조금 높게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20대 전반의 경우 남성들의 군복무로 인한 부재자투표가 있기 때문에 더 높은 투표율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작년에 치루어진 07년 대선에서는 20대전반의 투표율이 51.1%인데 반해 20대후반의 투표율은 42.9%로 8.2%정도의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즉 17대 대선에서는 20대후반의 청년들이 현저히 투표를 적게 했다는 의미다. 20대전반의 투표율을 보면 16대 대선에서 57.9%로 당시의 30대전반보다 6%정도가 낮기는 하나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17대 대선으로 가면 20대 전반의 투표율은 51.1%로 30대전반의 51.3%와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19세 그러니까 대학새내기들의 경우는 54.2%로 30대전반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이며 가장 진보적일 것으로 판단되는 30대후반과도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간단히 정리하면 00년 16대 총선부터 04년 17대 총선까지 20대전반과 20대후반의 투표율은 20대 전반의 군복무자의 부재자투표라는 요인을 감안하면 투표율에 차이가 거의 나지 않으나 07년 대선에서는 갑자기 20대 후반의 투표율이 급격히 하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대선이 끝난지 약 4개월후 치루어진 이번 18대 총선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염두해두고 분석을 해보면 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20대전반은 20-24세, 20대후반은 25-29세이므로 02년 대선을 기점으로 보면 02년 대선에서 57.9%의 투표율을 보였던 당시의 20대전반(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대학교 학번으로 표현하면 97학번부터 01학번까지이다)에서 5년후인 07년 대선에는 42.9%의 투표율로 무려 15%나 투표율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이는 평균 투표율이 02년 대선 약70%에서 07년 대선 약63%로 약 7%하락한것의 2배가 넘는 수치이다. 참고로 02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20대 후반의 경우(92학번부터 96학번까지)에는 07년 30대 전반이 되었을때 55.2%에서 51.3%로 평균투표율이 7% 하락한것에 비하면 투표율이 더 적게 하락했다. 마찬가지로 30대전반의 경우도 02년 64.3%에서 07년 대선 58.5%로 약 6%의 하락에 그쳤다. 40대의 경우도 30대후반이 평균 5%정도의 투표율이 하락하고 본래 40대전반에 있던 인원이 5%정도 하락했다고 계산하면 크게 하락했다고 볼 수 없다. 즉, 20대 후반에서 투표율의 급격한 하락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02년에서 07년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20대 후반을 제외하고는 평균적인 투표율 하락만 있었으나 20대후반의 경우는 평균을 2배이상 상회하는 투표율하락을 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가? 과연 02년에서 07년의 5년동안 당시의 20대전반에 해당하던 대학생들(대학진학률이 83%를 넘어섰기 때문에 20대 대부분을 대학생으로 보아도 무관하다), 그러니까 97학번부터 01학번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02년에서 07년까지 무슨일이 일어났는가?

여기서 우리는 97년 IMF이후의 한국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지난 기간의 진보운동의 노선, 또는 학생운동의 노선에 대한 검토를 해야만 한다. 02년까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대학생들(20대전반)이 02년에서 07년사이에 정치에 급격한 환멸과 냉소를 보내는 세대로 바뀌었다. 97년 IMF이후 잠시 청년실업이 심각해졌다. 그러나 99년 벤쳐열풍과 내수확대(신용카드발급 확대라는 희대의 미봉책으로 인한것이었지만)로 인해 청년실업문제는 잠시 완화되고 이는 02년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문제는 02년이다. 02년 6월 월드컵과 12월 대선이 끝나고 03년이 되었을때 한국경제는 내수가 마이너스로 가는 극심한 경제침체를 겪는다.(바로 이시기가 02년 말 카드대란이 일어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이 시점부터 그러니까 03년부터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텔레비젼 시트콤에 청년실업자가 등장하기 시작한것도 이 시기이다) 결국 내수경제의 붕괴와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은 결국 07년에 이르러 청년실업 100만시대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또한 02년에서 07년까지는 또한 97년 IMF로 인해 99년까지 잠시 동결되었던 대학등록금이 01년을 기점으로 물가인상률의 2-3배를 넘나드는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대학등록금 문제가 대학사회 최대의 갈등으로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02년에서 07년까지 대학생들은 청년실업 100만, 등록금 1000만원 시대가 도래할때까지 계속해서 고통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등록금의 경우 이미 02년부터 각 대학에서 나름대로의 저항을 했으나 실질적으로 등록금 동결이나 인하등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정작 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04년에서 06년이나 당시 사회운동은 이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학생들의 투쟁은 상당히 고립된 가운데 결국 패배 또는 애매한 타협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02년에서 07년까지 대학생들은 청년실업과 등록금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나 말그대로 사회로부터 방치되어버린 것이다.(그 와중에서도 진보 또는 개혁을 자처하는 일부 언론들은 20대의 보수화/탈정치화를 질타했다!)

진보운동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해야할까?

상황을 이렇게 놓고 보면 결국 현재 20대후반이 된 02년에서 07년까지의 대학생, 그러니까 97학번부터 01학번까지를 급격한 탈정치화로 몰고간것은 바로 386들이 주도했던 노무현 정권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이러한 문제의식이 바로 우석훈이 그의 저서 ‘88만원세대’에서 지적한 386과 20대의 세대간 갈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진보운동의 측면에서의 주체적인 평가이다. 02년에서 07년까지 당시의 대학생들이 청년실업과 등록금으로 인해 절망으로 빠져들고 있을때 과연 진보운동은 무엇을 했을까? 그리고 진보운동의 주류인 자민통진영의 학생운동이 주목했던 자주통일정세는 어떠했을까? 한번 고민해보자. 한반도 자주통일정세의 핵심인 북미간의 갈등은 02년을 시작으로 높은 긴장상태로 들어갔으나 기본적으로는 정세가 열려져왔다고 할 수 있다. 02년에는 역사적인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가 있었으며 04년에는 탄핵사태로 인한 엄청난 대중적 진출이 있었다. 이 와중에 학생운동은 615시대를 맞이하여 20대 청년학생들의 정치적 진출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하곤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정작 그 02년에서 07년까지 자민통운동의 주력이라고 이야기되는 대학생들과 청년학생들은 깊은 절망속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소득 2만불시대의 한국사회가, 진보진영의 거리의 반미촛불시위가, 반독재 민주화의 386개혁정권이 청년실업도 등록금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전연령대 최저의 투표율로 상징되는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로 돌입하기 시작한듯 보인다.

단언컨대 지난 5년간 진보운동은 20대전반, 대학생들은 조직해내는데 실패했다. 그들을 우리운동의 정치적 동력으로 성장시키는데 실패했으며, 결국 이들은 탈정치화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직 청년학생들의 정치성이 죽은 것은 아니다. 지금의 20대전반은 아직 30대전반(소위 한총련이 제일 잘나가던 시기인 92학번부터 96학번까지다)과 비교해서도 낮지 않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정치적 관심이 아직은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올해 3.28일 대학생들의 대규모 동록금 집회에서도 보았듯이 대학등록금과 청년실업문제일 것이다. 지금 진보운동이 이 두 가지 문제로 20대전반, 대학생들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5년후 그들은 더 이상 투표소에 나오지 않을 것이며 지금의 20대후반의 절망의 88만원세대를 구출하지 못한다면 그들 역시 5년후에는 이제 30대의 투표율마저 낮추게 될 것이다. 2, 30대는 투표를 하지 않고 지금의 한나라당에 열성적 지지를 보내는 60대 이상의 경우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은 이미 많이 늘어났으니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선거에서 진보의 승리나 약진은 결코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진보진영이 88만원세대를 구출하고 등록금투쟁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글은 통일뉴스(www.tongilnews.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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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명박정부는 청년실업을 해결할까?

-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을 개악하고도 청년실업 해결을 이야기하는 것은 뻔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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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이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물론 이것은 대선때도 공약으로 걸린것이고 지금의 이명박 정부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공공연히 일자리 300만개 창출을 외친다. 논리는 간단한데 7%성장하면 60만개일자리가 생기고 그렇게 5년이면 <60만 * 5 = 300만>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훌륭하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IMF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정부의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더 놀랍다. 아니면 생각해낼 가치가 없었던지...


이번에도 한나라당은 청년실업 해결을 인터넷 광고에 버젓이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정말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청년실업을 해결할까? 아직 총선이 끝나지도 않은시점에,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한달여 밖에 지나지 않은시점에(정말 누구말대로 한 2-3년은 지난것 같지만...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시간은 역시 상대적으로 흐르나보다...) 그들의 ‘의지’를 의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지도 모르나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그들의 ‘실천’을 보고 그들의 ‘의지’를 의심해보는 것은 타당할 것이다.


현재 청년실업은 비경제활동인구까지 포함하여 청년구직자, 그냥쉬었음등을 포함할 경우 100만명에 이른다. 특히 그냥 쉬었음이라고 대답하는 NEET족은 현재 40여만명에 달할정도로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취업난이 하도 심각하자 아예 취업활동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하튼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해졌으면 더 심각해졌지 해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청년실업 해결을 그렇게 외치면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그러니까, 2008년 2월 29일에 ‘청년실업해소 특별법’의 ‘15조’를 삭제해버렸다. 소위 정부조직 개편의 과정에서 기존 노무현 정부의 과도하게 많은 ‘위원회’들을 없애버린다는 명목하에 ‘청년실업해소특별위원회 설치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전담행정조직’을 둘것을 명시하는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의 15조를 삭제해버렸다.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은 청년실업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기 시작한 2004년 3월 5일에 제정된 법이다. 탄핵사태가 있기 직전, 그리고 2004년 4월 총선이 있기 바로 직전에 제정된 법이다. 이쯤에서 독자들도 예상하겠지만 말그대로 총선용으로 급조된 법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급조된 법이라도 법인지라, 그리고 여하튼 법이 만들어지면 철밥통이라 비난을 받던, 게으르다고 호통을 듣던 움직여야 하는 것이 공무원 사회인지라, 이후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지기는 한다. 물론 그 실효성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하자. 여하튼 청년실업해소특별법에 의거해 진행되는 사업중에는 효과를 보는 사업도 있고 없는 사업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주목할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의 제15조,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정권인수를 하자마자 삭제한 바로 그 15조는 정부가 청년실업해소특별위원회를 두어 노동부, 교육부, 여성부등 각 정부부처가 그에 맞게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정책과 사업들을 기획하고 노동계, 재계까지 참여하여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것을 강제하는 조항이다. 또한 정부가 ‘전담행정조직’ 즉, 청년실업 해결을 전담하는 행정조직을 둘것을 명시하는 조항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조항을 삭제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정부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모여서 논의할 필요도 없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전담행정조직도 필요 없다는 것이니까.... 통일부, 여성부를 폐지하니 마니하는 혼란스러운 정치논쟁속에 정작 100만이 넘는 청년실업문제를 담당하는 위원회와 전담행정조직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2008년 2월 29일에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한 행동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황당한 것은 이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은 2004년 3월 5일(다시 강조하지만 대통령 탄핵사태가 있기 바로 일주일전 그리고 2004년 총선이 있기 바로 한달전) 바로 ‘한나라당’이 발의하고 통과시킨 법이라는 것이다. ‘실천’은 그냥 하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실천’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참고자료>

97년 IMF이후 정부의 청년실업해소 정책 추진 경과 과정

□ 경과 과정

- 1998년 ~ 2001년 : IMF 직후 다양한 실업대책과 제도 등 마련

●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률이 12%를 상회하면서 청년실업대책이 등장

● 1998년 3월 종합실업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기 시작

● 1998년 3월「실업문제 종합대책」수립을 계기로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협의기구가 필요성 제기로, 1998년 4월 국무총리 소속하에 ‘실업대책추진위원회’를 설치ㆍ가동(근거 : 국무총리훈령 제361호)

● 1998년 11월 국무총리실 산하의 ‘실업대책(실무)위원회’로 격상 운영

● 1998년 7월 지방노동관서의 고용보험과와 직업안정과를 통합하여 고용안정센터를 개설하고 취업알선ㆍ고용보험ㆍ직업훈련서비스를 한곳에서 제공하는 원스톱서비스 체계로 개편

● 1998년부터 한국노동패널 조사(KLIPS)」와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실시

● 1999년 4월 고용안정정보망(Work-Net) 개통

- 2002년 : 대상별 특성화된 고용안정대책으로 전환

● 2002년부터의 실업대책은 질 높은 고용안정 및 취약계층 취업지원에 중점을 둠. 즉, 외환위기 이후 추진되어 온 실업대책사업을 마무리하고 대상별로 특성화된 고용안정대책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해로 설정. 이에 따라 직업훈련, 새로운 일자리 창출, 취업알선 등을 강조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비중이 높아짐

- 2003년 :「청년실업종합대책」수립과 시행

청년실업관련 예산

년도

2003년

2004년

2005년도

2006년

예산

3,623억원,

5,643억원

8,112억원

7,573억원

- 2004년 : 청년실업해소특별법 신규제정 (3월 5일)

● 경기침체와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이전에 따른 산업공동화현상 등으로 청년실업이 사회문제화됨에 따라, 국부창출의 원천인 청년들의 실업이 경제성장의 장애요소가 되거나 사회불안 요인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 청년미취업자에 대한 취업기회 제공 및 취업능력 제고를 통하여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에 기여하고자 함

● 2004년 6월 29일 청년실업해소특별법 시행령 신규제정

- 2004년 고용지원센터 통합ㆍ대형화 추진

● 고용지원센터 통합ㆍ대형화를 추진하면서 종합센터-일반센터 체제로 개편하고, 기능을 차별화함

● 종합센터 내에 청소년 취업지원실을 설치하여 청소년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함

● 고용지원센터와 대학 또는 우량기업 간“취업지원협약” 추진

고용지원센터의 업무 추가ㆍ확대 과정

1998년

고용보험 1인 이상 사업장 적용 확대

1999년

구직세일즈 공공근로사업, 청소년 직장체험 프로그램, 장기실업자 고용촉진장려금 제도, 맞춤훈련 등

2000년

성취프로그램, 직업적응훈련, 자활대상자 취업지원 등

2001년

전직지원장려금 제도, 육아휴직급여 제도, 북한이탈주민 직업훈련, 중소기업훈련 컨소시엄 등

2002년

청년층직업지도프로그램, 청소년 연수지원 등

2003년

외국인 근로자 취업관리,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 등

2004년

외국인고용허가제, 일용근로자 고용보험적용 등


- 2004년 이후 학교와 노동시장의 원활한 이행을 중심으로 장기적 대책 추진

● 2004년 이후에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등에 따른 고용흡수력 저하로 청년실업의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학교와 노동시장 이행의 원활화를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시작에서 청년층 고용을 지속적으로 촉진 및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


- 2008년 2월 29일 청년실업해소특별법 1차 개정

● 이명박 정부 취임과 함께 정부조직개편 논의에 따라

● 15조 청년실업대책특별위원회 및 전담행정조직 설치 조항을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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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uka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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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많은 영화 원스를 보았다. 어설픈 로맨스 영화였으면 지랄하네하고 뒤돌아서려고 했는데...어라? 이 영화가 보통이 아니다. 정확히는 진심이 전해진다라고 해야겠다.


 

두 사람이 연애관계가 아닌것도 감동적이었고 음악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가진것 없는자들의 연대라는 측면에서 감동적이었다. 아마도 최근 나의 화두는 계속해서 '연대'라는 가치다. 도대체 어떻게 없는 자들이 연대할 수 있을까? 인간은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고 함께 할 수 있을까?.... 올해 2008년도의 나의 화두도 역시 이 '연대'라는 것의 연속일 것 같다.


 

주인공 여자가 밤에 잠옷차림으로 집을 나와 배터리를 사고 노래를 부르며(이 장면과 이 노래가 가장 맘에 들었다) 집으로 걸어오는 장면은 아찔하다. 처음에 이 장면을 볼때는 너무 조마조마해서 보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두가지 영화에 기인하는데, 하나는 모니카 벨루치의 "돌이킬수 없는"이고 다른 하나는 조디포스터의 '브레이브 원'이다 두 영화 모두 밤길을 여자가 걷다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있는데....두 영화의 영상이나 편집이 너무 충격적이기에 더욱더 깊이 뇌리에 남는다. 문제는 사실 이러한 영화의 장면들이 이후 다른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이나 흐름이 나올때마다 긴장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든다는데에 있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아마도 정성일이 말하는 영화의 윤리성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원스에서 그 여자가 집에 걸어오는 길이 안전하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손에서 땀이 다 날 정도였다. 마지막에 그여자가 안전히 집에 도착했을때 얼마나 안도의 기분이 들던지...그 장면을 두번째 볼때 비로소 안심하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시한번 영화의 윤리, 영화에서 폭력적인 장면, 그리고 잔인한 장면이나올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고민은 결국 이 영화가 한국의 88만원 세대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속의 그들은 아마 1000유로세대일것이고 이 영화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어필된다면 그들이 가진게 없어서일 것이다.


 

가진게 없는 자들의 연대는 감동적이다. 나에게 원스라는 영화는 그렇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


 

서유럽을 전전하는 동유럽의 한 가난한 젊은 여성과 가진것 없는 가난한 음악가, 그리고 촌스러운 거리의 악사들과 할일없이 남의 집에서 TV를 보는 아마도 다른 영화에서 나왔으면 스킨헤드 나치 추종자나 거리의 깡패들쯤으로 그려졌을 아파트의 젊은 청년들,, 그리고 예쁜 꼬마 여자아이.... 없는 자들의 연대는 늘 가슴아프고 감동적이다. 아마 '거북이도 난다'라는 영화에서 지뢰에 팔잘리고 미군에 강간당하고 다리가 잘린 아이들끼리의 연대가 감동적이고 슬픈만큼 제1세계에서 벌어지는 희망없는 가난한 젊은이들의 연대도 감동적이고 슬프다.


'인간'이라는 단어앞에는 사실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다

Posted by haruka23